제이슨이 시애틀 방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애틀에서의 자신의 추억을 제외하면,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자연환경과 도시적 특성에 기인한다.
시애틀은 미국내 현대적 도시가 제공하는 도심에서의 편리함과 실용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자연환경도 좋고 인문사회적 환경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주위 자연환경으로는 국립공원과 호수가 대표적이다. 근처에 워싱턴 레이크, 퓨젯 사운드, 올림픽 국립공원 등이 있다. 인문환경으로는 미국내 아사이인에게 가장 우호적이라는 특성을 워성턴주는 가지고 있다. 한국계가 워성턴주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의회 부의장까지 했을 정도이다.
이날 그 변호사들끼리 회합이 이루어진 장소는 The Golf Club at Newcastle이라는 골프장. 이곳에서는 시애틀 다운타운, 벨뷰 다운타운, 워싱턴 레이크, 퓨젯 사운드, 올림픽 국립공원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골프장에 도착한 제이슨은 서서히 몸을 푼다.
골프운동시에 제이슨은 몸풀기체조로써 국민체조를 한다. 오늘은 국민체조를 하지만, 가끔씩은 군대에서 배운 국군도수체조라는 것을 할 때도 있다. 이 모습을 보는 미국인들 중에서는 어쩌다 너무 신기하다는 듯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보기도 한다.
제이슨은 체조로 몸이 완전히 풀리면, 드라이빙 레인지에 서서 7번 아이언으로 시작한다. 곧바로 드라이버로 장타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7번 아이언을 잡고 단타거리로 연습을 시작한다. 이어 중거리로 연습거리를 올리고, 몸이 완전히 풀리고 자세가 완전히 잡아지면, 이윽고 장타거리를 연습한다. 이어 7번 아이언과 드라이버를 교체하고는 자세를 완전히 잡고 풀스윙을 날린다.
정중앙을 정확히 맞은 골프공은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직선으로 쭉 날아오르며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떨어진다.
“나이스샷!”
옆에서 함께 몸을 풀던 신참변호사 김창식 변호사가 추임새를 넣는다.
김 변호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서 대학까지 한국에서 마쳤다. 오리지널 한국인인 김변호사는 로스쿨 과정만 미국에서 했고 사고방식은 한국식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비자문제와 영주권문제가 항상 따라다니는데, 제이슨의 로펌에서 영주권까지 스폰서를 서줄 예정이다. 영주권자로 미국내에서 5년간 별다른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지내면, 이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에는 검은머리 외국인인 크리스 서 변호사가 몸을 풀고 있다.
크리스 변호사는 겉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시민권자이다. 워싱턴주 출생이며 사고방식도 완전히 미국식이다. 다만 부모님이 가정내 한국언어교육 등에서 관심을 많이 보여, 제임스는 한국어도 출중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왠만큼은 한국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이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몸을 풀던 일행은 이윽고 18홀을 차례로 돌기 시작했다.
제이슨이 입을 연다. “오랜만에 같이 필드로 나오니깐 참 좋구만 그래…”
김 변호사가 맞장구를 친다. “그러게 말입니다. 좋네요…”
크리스 변호사가 한마디 한다. “It’s a, it’s a beautiful day. Wow, the weather is really nice today. What a great day!”
제이슨이 크리스 변호사에게 답한다. “Yeah, the weather is marvellous.”
일행은 차례대로 공을 치고, 곧이어 걸어다니며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해서 이어나간다.
제이슨이 대화를 주도한다.
“오늘 오랜만에 같이 나와서 참 좋다. 그리고 오늘 미니 특별강의식으로 내가 미국 법조계와 소송현실에 관해서 내 경험과 의견을 큰 틀에서 몇 가지 전수해 줄테니까, 참고 잘 해, 알았지.”
두 신참변호사가 입을 모은다. “예, 잘 알겠습니다.”
제이슨이 말한다. “좋았어. 그래 내가 미니특강을 시작하지.”
제이슨은 골프장을 두 신참변호사와 함께 걸어다니며 도제식으로 전수해주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풀어놓는다.
“내가 말이야, 살인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가장 싫어하는 부류들이 미국에 있어.”
김창식 변호사가 묻는다. “누군데요? 궁금하네요.”
제이슨이 답한다. “바로 미국 변호사들이야.”
“내가 제일 싫어하고 경멸하고 사실 상종조차 하기 싫은 부류가 미국에 무지하게 많이 있는 악질 변호사들이야. 그것들은 정말 사람도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그 중에서도 더 심각한 부류가 있어. 미국에서 말이야, 판사들이 말이야, 한국기준으로 미국판사들을 ‘판사’라고 부르면 그 캐릭터(character)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들을 판사라고 부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한국식의, 한국스타일의, 한국기준의 판사상이 떠오르게 되거든.”
“그러면 그네들에 대해서 이해와 대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지.”
“미국 판사들을 이해하려면, 일단 그들을 변호사들이라고 불러야돼. 법조일원화로 변호사에서 판사를 제도적으로 충원하게 되지만, 그와 다른 맥락으로 그들을 변호사라고 부르고 생각해야돼.”
“그런데 그냥 변호사라고 부르면, 또 이해가 제대로 안되니까, 제대로 부르려면 악질 중의 악질 변호사라고 불러야, 미국 판사상이 제대로 이해되는 첫단추가 끼워지는거야, 알았지? 미국 판사들은 뭐다? 그래 악질 변호사들이야.”
“왜 그런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려면 길어지는데, 오늘은 간단히만 설명하면, 판사충원 구조가 2가지인데, 선거로 하거나, 정치인이 지명을 하거나, 그 둘 중에 하나인데, 그 정치인도 결국 선거로 뽑히니까.”
“그런데, 미국 선거는 알다시피 돈이 많이 들잖아. 엄청난 선거자금을 모으려면 결국 기업들한테 후원을 받는 년놈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야. 그래서 안돼. 결국 썩게 되는 구조일 뿐더러, 이미 썩은 년놈들이 들어와.”
“기업하는 놈들이나, 그 배후의 오너그룹에서는 공짜로 큰 돈 낼리는 없고, 결국은 투자 대비 회수를 하려고 하지. 회수의 시기나 방법은 어느 정도 달라도 세상에 공짜점심이 결국은 없는 법이지, 결국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더라도 돈이 나와야 하는 법이지. 안그래?”
“내가 경험해 보니깐 말이야, 미국 법원의 판결문이 그중에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판결문이나 명령문이 말이야, 사실은 범죄문서들이야.”
제이슨의 말을 경청하던 두 신참변호사의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래. 범죄문서들이야.”
“그런데 그것이 말이야, 화이트칼라 범죄이다 보니까, 그 겉모양은 법률용어와 법률논리로 포장만 되어있거나, 그렇게 위장이 되어 있지. 하지만 결국은 다 범죄에서 비롯된 범죄문서들이야.”
“자네들이 내 말이 지금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이 바닥에서 나처럼 조금 굴러다니다 보면은 말이야, 다 알게 되어 있어.”
“내가 지금 백신 차원에서 미리 백신주사 놔주는거야. 알았지?”
“일단 로스쿨에서 배운 것은 다 잊어버려. 물론 큰 맥락의 지식은 잊어지지는 않겠지. 세부지식은 벌써 많이 잊어버렸겠고. 창식이가 바둑을 두지? 바둑 배울 때, 정석은 일단 배운 뒤에 그 다음은 그걸 잊어버리라고 하잖아? 마찬가지야. 로스쿨에서 배운 것도 일단 배운 다음에는 잊어버려야돼. 바둑의 정석처럼.
“왜냐하면 정석대로 되지가 않거든. 물론 정석의 원리는 참고할 만 하지. 그 원리는 가지되 바둑이 교과서에서 나온대로 그대로 곧이곧대로 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소송이 그래.”
“자, 내가 3가지로 이유를 정리해 줄께. 누가 그랬듯이 복잡한 내용도 단 3가지 정도의 포인트로 요약해서 전달하라고 하더라. 그래야 전달이 잘 된다고.”
“내가 할 말은 많지만, 3가지로만 단순화시켜 말할께.”
“첫째, 원래 말이야, 세상이치가 그래.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세상이 돌아가지가 않아. 어느 분야나 다 그렇잖아. 냉정한 현실, 또는 경우에 따라 냉혹한 현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그런 건조한 내용과는 한참 다르지. 그게 첫째 이유고.”
“둘째, 말이야, 미국에 법률체계 때문에 그런데, 여기 법률시스템이 한국의 직권주의와는 다른 개념의 당사자주의, 즉 adversarial system이잖아. 그래서 그렇고.”
“셋째로 말이야, 이게 중요한 오늘의 포인트인데 말이야. 작은 소송, 그런 자잘한 소송에는 해당이 안되도, 큰 액수의 소송에는 해당되는 말이야.”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큰 소송에서는 이길 수가 없어. 무조건 그래.”
“너희들이 실력이나 노력과 상관 없는 이유야. 그래서 그래. 결론만 말해서, 왜 그러냐?”
“대형소송은 너희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이겨. 왜 그러냐?”
“두가지인데, 하나는 소송방해이고, 둘은 소송범죄 때문이야.”
“지금은 결론만 말하고, 세부 내용은 차차 내가 덧붙일께.”
“그럼 내가 왜 큰 케이스를 하게 됐느냐? 그럼 왜 초대형 금액의 사건들은 줄줄이 나를 찾아오고 내가 수임해 주기를 바라고 있느냐?”
“그 이유도 당연히 있지. 그거는 내가 다른 변호사들과 달라서 그래. 완전히 다른 변호사야.”
“소송에서 마음을 비운, 완전히 막가는 변호사라서 그래. 다른 변호사들이 도저히 따라할 흉내도 못내는. 당연히 리스크도 있지. 하지만 나는 상관 안해. 마음을 비웠으니까. ‘죽으면 죽으리랐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웠으니까 오히려 가능한 방식이야.”
“자네들 같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변호사들은 사실 나를 따라하기를 권유할 수도 없고 권장하지도 않아. 오로지 자기 개인만이 절대적 고독 속에서 결단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야. 그래서 다른 이에게 추천할 수도, 강요할 수도 없어.”
“그런 초대형 소송들은 정말 세계대전(世界大戰)이야. 제3차 세계대전이 내 앞에 터졌다는 생각으로 국가총력전(國家總力戰)을 펼친다는 각오로 임해야 돼. 생즉사, 사즉생.”
(제15화에서 이어집니다.)
[집필] 코리아베스트 편집부
www.koreabest.org
작성일: 2024년 4월 19일 금요일.